2009년8월  Aug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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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아닌 필수 외국어교육

이인섭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장)

이인섭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장)  

외국어를 통해서 외국인과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지만, 외국어 화자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외국어이다. ‘B형 남자’가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을 때, 방한하는 아랍인들에게 처용 설화를 소개하면서 ‘B형 남자 친구’라는 영화 대사를 소개한 적이 있다.
채영: 댁이 처용가에 나오는 처용과 같은 상황에 빠졌다면 어떻게 했을 거 같아요?

1. 차고 있던 칼을 잡고 방안으로 확 돌진한다.
2. 문고리를 잡고 들어갈까 갈팡질팡.
3. 문에다 구멍을 내고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음미하면서 즐긴다.
4. 바로 신고해서 간통사건으로 잡어 처 넣는다.

영빈: 나야 당연히 바로 신고하죠.

채영: 문고리를 잡고 고민하는 건 A형, 돌진하는 건 O형, 훔쳐보는 건 AB형, 그리고 비겁하고 비열하게 신고해서 잡아 처 넣는 건 인류의 적 B형이죠….”

필자도 B형이기에 씁쓸해 해 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혈액형 별 반응을 소개하면 아랍인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마치 아랍인들은 모두 O형만 있는 양 반응하는 것은 왜일까? 외국어를 공부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종종 느껴오던 뭔가 다른 정서가 극명하게 부각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단순하게 우리의 생각을 외국인과 소통하는 기능을 넘어서 외국인의 문화와 정서에까지 닿을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2001년 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이 본격화 된 이후 한동안 미국에서 유행했던 말이 있다.

“영어로 다국어 능통자는 multilingual person,

3개 언어 구사자는 person,

2개 언어 구사자는 person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개 언어만 구사하는 사람은 뭐라고 할까?

monolingual person?

…………………………

No. American..”

이 말은 외국어 교육을 등한시해오던 미국 사회를 자조적으로 평한 유명한 표현이다. 미국이 영어만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외국어 교육을 등한시하며, 우월주의에 빠져있다가 정신을 차린 중요한 전기라고나 할까, 이러한 일련의 사건 뒤 미국에서는 외국어 교육, 특히 아랍어 교육의 붐이 일었다.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재원을 마련하여 외국어 교육에 쏟아 부으면서 미국의 정보력을 키웠다. 이처럼 이 시대의 외국어는 개인의 덕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서로의 막힌 생각을 뚫어주고 다른 정서를 이해하게 하는 길이 외국어이기에 우리에게 외국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한국어만 잘해도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자부하곤 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먹고 사는 ‘삶’이 인생의 전부인 셈이다. 이러한 말은 농사지으면서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행복해하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말이지, 정보가 힘이고 세계적인 글로벌 네트워킹이 중요시되는 이 시대에 적절한 말은 아니다. 중세 봉건시대에 음악과 미술이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면서 점차 인류 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가 되었듯이, 오늘날 외국어가 그러한 필수 덕목이 되었다.

치열했던 우리 부모들의 시대는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 삶 자체가 예전보다 더 윤택해지고 풍요로워진 이 시대에 삶으로만 안주하면서 행복해하는 것은 퇴행이다. ‘삶’에 ‘ㅏ’를 붙이면 ‘사람’이 되듯이, 삶을 살던 우리에게 외국어는 ‘ㅏ’와 같아서 사람과 더불어 의사를 소통케 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나아가 사람을 얻는 데 필수적인 덕목과 실력이 되었다.

영어만을 고집하던 미국이 우물 안에서 벗어나려고 많은 재원을 쏟아 부으며 뒤 늦은 출발을 하던 잘못을 지켜보았던 우리가 그러한 잘못된 길을 답습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나라가 우리말이나 영어에만 갇혀있다가 국가 경쟁력 갖추지 못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겠다. 제2외국어라는 이름으로 전락한 다양한 전략어가 우리나라의 성장과 국가 경쟁력 강화의 지름길임을 개인과 국가가 모두 깨달아, 우리나라에서만큼은 1 개 국어 하는 사람이 Korean이라는 말이 들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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